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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엔블루의 정규 2집 '2gether'발매를 앞두고, 이제서야 지난 몇달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느 멋진 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우선은 앨범에 대한 리뷰, 그리고 제가 직접 가서 본 One More Fine Day 콘서트에 대한 감상, 요렇게를 14일 전까지 끝내보려 합니다. 어떻게든 솔로 뮤지션 정용화의 작업물들에 대해 올해 안에 자세한 감상평을 글로 적어두고 싶었고, 되도록이면 밴드앨범이 나오기 전에 마쳐야 할 듯 하여 이렇게 됐습니다... 좀 많이 늦어진 점 미리 사과드릴게요.

이 리뷰는 지난 솔로앨범 발매 당시 이벤트 때 썼던 리뷰에 살을 붙여 작성했습니다. 
주의: 다소 장황하고 매우 긴 글이 될 예정입니다.



‘어느 멋진 날’이라는 앨범을 쭉 듣고 느꼈던 건, 정용화라는 사람의 지난 27년을 오롯이 담았구나…하는 거였습니다.

정용화는 ‘어느 멋진 날’이 꼭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고, 실제로 그가 지은 많은 수의 곡들이 그러한 중의적인 내용을 가졌었죠.

이제까지의 많은 곡들은 겉으론 간혹 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어도, 다시 읽으면 춥고 힘든 긴 밤과 긴 겨울이 지나면 해가 뜨고 따뜻한 봄이 올 거라는, 어려움과 벽을 딛고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청년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왔습니다. 음악(과 음악가로서의 인정)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고백한 걸로 읽었던 ’Can’t Stop’도 그랬고, ‘One Time’ 부터, ’In My Head’, ‘Where you are’, ’Time is over’ 그리고 이번 앨범의 수록곡인 ‘Checkmate’으로도 이어지지요. (‘한맺힌 DSM라인’ 이랄까) 

이렇게 미래지향적이던 열혈청년이, ‘어느 멋진 날’을 통해 이제는 과거를 반추한다는 점이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날은 연인과 즐겼던 행복했던 날일 수도, 요즘 인터뷰에서 언급하곤 하는 패기 가득했던, 일주일에 2시간만 자도 끄떡없었던, 풋풋한 정용화의 (지금보다) 젊은 날일 수도 있겠죠. ‘추억은 잔인하게…’도 그렇고, ‘마지막 잎새’나 ’27 years’도 그렇고 이번 앨범에는 유난히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어느 멋진 날'이라는 앨범은,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정용화의 삶을 압축해놓은 하나의 자서전과 같은 음반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제껏 한없이 앞만 보며 달렸던 그에게, 그리고 아직도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는 그에게, 새삼 브레이크를 걸고 자신과 자신의 ‘멋졌던 날’들을 돌아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룹을 이끌어오다 이제는 자신만의 정규앨범을 만들 기회를 얻고 조금 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던 걸까요?  들여다 보니, 마냥 신나고 밝은 이야기만 있었던 건 아니었고, 아름다운 날들도, 지우고 싶은 날들도, 자신을 꼬옥 끌어안아주고 싶었던 날들도 있었던 걸까요?  5년 넘게 그 험한 곳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성실하게 자기 위치를 지켜온 그가, 늘 자신 이상의 밴드와 회사를 대표해야 했던 그가, 드디어 ‘정용화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던 것일까요. 그 결과물은, 본인 성향처럼 직접적으로 깊은 음울함이나 처절함이 표출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역설이나 반어법처럼, 그만의 은근한 방법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참 그 답다…고 느껴졌습니다.


우선 인트로부터 이야기해볼께요.

스트링 선율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스트링 ‘만’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블루스톰 때 몇가지 락발라드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던 편곡도 떠오르고, 캔트스톱때의 현악 인서트도 떠오르지만, 처음으로 현악만 이용한 화음 메이킹인데도 각 악기의 음역대를 고려해 겹쳐지는 하모니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냈죠.
이어지는 타이틀 곡 ‘어느 멋진 날’의 조금 긴 프리루드로 볼수 있으면서도, 스스로도 완결적인 짧은 멜로디!

들을 때마다 뭔가 벅차옵니다.
어마어마한 앨범의 시작을 웅장하면서도 촉촉히 알려오죠.


그리고 ‘어느 멋진 날’.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잔잔했습니다. 
그간 정용화의 곡에서 느껴졌던 중독성 강한 훅이나 어떤 화려한 장치들보다는, 고요함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어요. 힘을 뺀, 절제된 보컬.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토해내는 향수 가득한 고백… 가슴저릿하게 저음으로 어루만져주는 첼로 스트링.

심심하다-싶었다가, 두번째 듣고는 눈물을 쏙 뺐습니다. 그리곤 무한 반복…ㅠㅠ

가사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소소해졌죠.
정말로 호숫가를 걷고어느 집 앞 공원에서 연인에게 떼를 쓰는 일상의 정용화가 그림처럼 그려져서 너무나 좋은 가사였어요. 그토록 좋아하는 영어 프레이즈 하나 없이,
“자그마한 얘기”, “아껴둔 말들” 같은 어여쁘면서도 허세스럽지 않은 단어들이 툭툭 던져졌죠.

멜로디는 초반부터 땅 치고 나가서 반복되는 후크 같은 자극적인 것이나 혹은 과장하려 몇 겹씩 치장한 코러스 없이, 스스로 ‘공기 반’을 넣었다고 묘사할 만큼 다소 여리고 담담하게 불러내다, 후렴구를 지나면서 스트레이트로 하이라이트까지 쭉 밀어붙입니다. 발라드인데도 절정에 치닫는 바이브레이션에서 질감있게 갈려내는 소리가 역시나 락 보컬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기세에 된통 얻어맞고 쓰러져 있다보면 후-후-후- 하는 팔세토로 나머지 정신까지 쏙 빼 갑니다. 그리곤 다시 저 아래부터 끌어와서 그날-그날-그날-그날-하는 마무리.

곡에 담은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와닿아 울렸던 것 같아요. 
여기, 지금 이 곳에 나의 모든 걸 다 바쳐 노래했습니다...라는 느낌.


재미있는 건 모 프로그램에서 용화가 이 곡을 김치치즈볶음밥(?) 같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평소 쓰던 팝 스타일의 (이건 원래 가이드 버전에서 더 강하게 드러나죠 https://instagram.com/p/6xorCgy9xe/ ) 발라드에서 그루브를 과감히 줄이고, 한국식 가요적인 요소를 세심히 고려해서 겹쳐넣은 느낌이예요. 기존 가요 리스너들도 이질감없이 듣되, 트레이드마크인 세련미는 유지한. 아이즈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신의 취향을 두고, 대중의 취향을 조금 당겨 가져온 느낌입니다. 


어찌보면 앨범내에 조금 더 팝스럽고, 조금 더 기존의 정용화스럽고, 조금 더 재기발랄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곡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스터피스’라서… 어느 앨범에 실리더라도 ‘수록곡’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던 클래식’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명곡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곡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아무튼, 다시 정용화의 삶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룹에서 솔로로 나온 싱어들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장르적 베리에이션을 주고 싶은데, 자신이 혼자서만 하는 것 보다는 그 분야의 사람과 하면 한결 정통이 되기 수월해지죠. 신선함을 주기도 하고, 음원성적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음악적인 인정을 묻어가기도 쉽습니다. (예: 김창완님이 곡을 주셨다면, 그 곡을 ‘깔’ 비평가는 많지 않겠죠.)

물론 그런 의도들도 없진 않았겠지만, 간혹 ‘콜라보를 위한 콜라보’로 정작 본인의 색이 죽거나 애매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반면, 이번 콜라보레이션들은 음악적으로도, 
또 정용화 개인의 삶을 반추하거나 그의 현재를 발현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이 효과는 그들에게 음악성을 기댄 게 아니라, 본인이 주도하고 본인이 쓴 곡들에 타 아티스트를 초빙한 형식이라는데서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콜라보 곡의 주인은 앨범과 각 곡을 프로듀스한 정용화이기에, 그의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음악성에 대한 비판도 오롯이 홀로 받는;; 리스크가 높으나, 한결 정도를 걷는 정면돌파인 셈입니다.)


그중 가장 가슴을 건드린 곡은, 3번 트랙 ‘추억은 잔인하게…’ 직접 밝혔듯이 윤도현씨에 대한 트리뷰트입니다. 처음엔 왜 락발라드가 앨범 초반부일까? 싶었었는데 (초장부터 급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것 같아서요) 어렸을 때 윤도현씨의 음악을 듣고 자랐고, 노래방에서 100번씩 불러가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했었죠. 가수 정용화의 소중한 시작, 10대의 정용화. 그 감성을 충실히 담은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앨범이 정용화의 27년 인생의 축소판이니까, 전진에 배치된 거죠.

왜 하던 장르를 답습했냐던 평가가 있었는데, 완전한 오독입니다. 이 곡은 해오던 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골라잡은 장르인 겁니다. 유년시절의 꿈꾸던 자신을, 이제는 그런 곡을 쓸 수 있게 된 작곡가가 되어 고스란히 재현한 거죠.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저는 이 곡의 보컬 어레인지가 너무나 벅차게 좋습니다.
용화가 노래를 수줍게 먼저 시작한 뒤, 자신의 우상 윤도현씨가 이제는 비슷한 키로 자라버린 소년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단단히 나타납니다. 그의 목소리를 수백번 수천번도 따라 연습해온 이제는 청년이 된 그는, 자신의 더 얇고 미성인 음색으로 우상의 결을 그대로 맞춰가면서 하모니를 절정으로 치닫게 하죠.  두 사람의 포개진 샤우팅이 이토록 아름답게 들린 적이 있었나…이렇게 심장 뛰게 한 적 있었나 여러 번 전율했습니다. (모 남초사이트에서는 거기 화음넣는 목소리가 윤도현은 확실히 아닌데 정용화가 이렇게까지 고음이 되느냐며 갑론을박했다는 해프닝이^^;;)

이 곡의 가사는 처음에 언뜻 들으면 조금 직관에 어긋납니다. 
분명 행복했던 시간인데, 자신을 너무나 괴롭힙니다. 제발 지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변하고 잊혀진다던 시간인데, 자신에게는 변하질 않습니다. 잊고 싶지만 또 한켠으론 보고 싶습니다. ‘어느 멋진 날’에서부터 이어지는 역설의 어법. 그런데 한결 감정의 파고가 세고 순도가 높습니다. 이성적으론 언뜻 쉽게 잡히지 않는 논리인데 감성을 후두둑 흔들어 버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하고 거친 남성성이 느껴지는 보컬이지만, 시는 결코 센 척 하지 않고 내면의 상충되는 감정들을 솔직히 말합니다. 강명석씨가 평한 대로 ‘직구’의 힘에 정말이지 크게 스트라이크를 먹을 수 밖에 없는 곡.


원기옥 - Energy.
버벌진트와의 협업은 전혀 놀랄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트위터로 작업실을 방문했던 스포일러도 있지만, 하드락과 함께, 정용화의 유년시절 사운드스케이프에서 크게 자리잡고 있는 장르는 힙합이었죠. 그런 그에게 한국어 랩의 라임체제를 거의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버벌진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얼마나 신나고 들뜨는 일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제가 다 기쁩니다.ㅋㅋ 추잔에 이어, 어릴 적부터 막연히 가졌을 꿈들이 연이어 이루어진 셈이죠. (aka 성공한 덕후...무서운 사람입니다.ㅋㅋㅋ)

그런데 정통 힙합을 하려고 노력했을거란 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는 자신의 팝적 문법으로 버벌진트를 끌어들입니다(!!!) 버벌진트가 이번 곡은 오랜만에 도전하는 비 힙합 곡이라고 했었죠. 한 분야의 거장과 협업하는 것도 대단한데, 무려 자기 스타일로 상대의 작곡 스타일까지 맞추게 한 겁니다. (반복합니다, 무서운 분...)

그가 A파트를 쓰면 용화가 그다음을 쓰는 식으로 협업했다고 하는데, 이번 콜라보레이션 중에서 제가 보기에는 가장 깊은 레벨의 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용화가 곡을 쓰고 파트너가 가사를 쓰는 정도가 아닌, 아예 골자부터 같이 세운 뒤 둘이 벽돌 하나씩 주거나 받거니 쌓아간 거죠. 용화가 보컬을 맡고 버벌진트가 랩을 맡은 점도 효율적인 분업을 보여줍니다. 서로가 퍼즐의 들쑥날쑥한 부분이 되어 틈을 빼곡히 메꿔주는 거죠.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이 곡의 영감이 드래곤볼에서 왔다는 겁니다. 자기가 팬이었던 뮤지션과 곡작업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제까지 자기가 어릴 때 너무나 좋아했던 만화를 썼다는 거....(덕후는 무섭다고 제가 얘기했던가요?...) 이처럼 콜라보 대상뿐 아니라, 영감마저 이 곡이 정용화의 자서전의 한 챕터로서 훌륭히 기능케 합니다.

가사 내용은, 제가 팬이라서겠지만 전 어떻게든 이 곡을 팬송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는 공연을 하면서도 그는 무대 위에서 팬들에게 기를 받는다고 말하죠. 실제로 그는 콘서트에서 이 곡을 공연하기 직전에 객석에서 기를 zmm zmm zmmmm 하면서 모읍니다. 손오공의 현신이 되는겁니다....(보고 있자면 이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재간둥이ㅋㅋㅋㅋㅋㅋㅋ)

노래를 듣다 보면 그가 힘들었을 시기가 주마등처럼 눈앞에 지나갑니다. 자기가 힘들었을 때, 한결같이 곁에 있던 건 너 뿐이었다... 자신의 어깨에 온 짐을 지고 버겁게 서 있던 그가 무너지고 있던 그 시기, 결국 그에게 힘을 주었던 건 계속 그 자리에서 그를 지지해준 팬들이 아니었을까요...? (궁예궁예) 

묘한 건, 참으로 밝고 신나는 멜로디의 곡인데 가사는 추락하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절절한 이야기이고, 발랄한 곡조에도 불구하고 들을 수록 울컥하고 진한 감동이 전해져옵니다. 직접적으로 팬들에게 “우리 팬들~ 사랑해~” 같은 가사가 아닌데도 더 마음 깊숙히 남아요. 그가 노래로 불평하는걸 싫어한다고 했던 걸 보면,  가장 힘들 시기에도 마냥 가라앉아 땅만 파고 있는게 아니라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이런 노래를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힐링을 준 자신과 함께 해준 이들에게 고마움까지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은 아주 많고, 그들 역시 조건없이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에 이 곡은 아주 폭넓은 보편성을 갖기도 합니다. 정용화와 특정한 기억을 갖고 있는 팬들은 팬들대로, 그렇지 않은 일반 청취자들도 공감하며 들을만한 훌륭한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마일리지.
이 곡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 곡이 타이틀이 아니라고?!?!!??!!?”

기타선율이 기존 어쿠스틱 곡 (사랑빛?) 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공연에서는 종종 선보이고 했던 보사노바 느낌의 편곡이 더해지고 
예의 팝스러운 꿀떨어지는 보컬에 YDG의 맛깔스런 랩핑까지.

처음부터 너무 좋았는데, 라이브를 듣고는 더 더 좋아지는 곡입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보여준 감미로운 애드립들이며, 얼마전 원모어파인데이 앵콘에서 보여준 어쿠스틱버전까지. 편곡 뿐 아니라, 그 중간에 YDG에 빙의하며 “YDG!”를 외치곤 천연덕스럽게 성대모사로 랩 부분을 소화하는 건 정말이지 들을 때마다 빵빵 터져요. (그 와중 너무 훌륭한 성대모사라 소름이 돋고~ 신기한게 원기옥에서는 버벌진트를 성대모사하지 않고 자기의 랩을 한단 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귀가 황홀해지는 사운드의 향연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2:35쯤 YDG의 “그 어떤 practical medical scientific knowledge”부분에 그야말로 경쾌하게 연주되는 건반 파트예요. 청량하고 청량하고 청량해서 마구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가슴에 나비들이 팔랑팔랑 날아들어오는 느낌.

가사는 역시 YDG의 랩핑이 발군입니다.
가끔 정용화가 쓰는 생활인으로서의 가사를 볼 수 있을까? 하고 궁금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데뷔때부터 빵 뜬 스타였고 1년의 절반이상을 해외에서 투어로 보내는 사람인지라 현시대 젊은이의 극히 일반적인 일상을 가사로 풀기가 쉽지 않을거란 생각이었죠.  그런데 거기에 한창 배우이자 랩퍼면서도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중인 YDG가 손을 맞잡으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정용화의 곡에서 “집에선 똥 기저귀 Shower 어린이집 Ride 월세 국민연금 대출이자 원금상환 주유비 생활비 고정지출”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 사건이 벌어지지요. 농도 진한 생활감이 훅! 들어오면서 웃음이 터집니다. 사실 정용화는 예능감도 엄청난 사람이라 뭐든 코믹하게 만들 줄 아는 센스가 있는데, YDG와 함께함으로써 그런 재미있는 요소가 한층 증폭된 것 같아요. 그동안 절실함이나 패기가 더 묻어났던 곡들과는 또 다른 장이 개척되었고, 장난끼 가득한 평소의 정용화를 잘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음악쪽으로도 재기발랄한 행보를 확장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흥미롭게도, 다른 콜라보레이션이 1) 정용화가 파트너에게 맞추거나 (윤도현) 2) 파트너가 정용화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거나 (버벌진트) 3) 서로 다르면서 교감되는 각자의 세계관을 합친 것(체크메이트) 이라고 한다면, 이 곡은 기획부터 YDG의 입버릇에서 나온 만큼 YDG의 존재감과 애티튜드가 기존 정용화의 스타일에 새로운 것을 확 들이부은 느낌이 듭니다. 전체적인 틀은 정용화의 그릇에 담았되, 담긴 음식에는 YDG의 양념이 강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전혀 이질적이거나 휩쓸려버리지 않고 정용화는 처음부터 자신도 그런 색깔이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컨셉을 쓱 흡수해서 소화합니다. 스스로 말했듯이 카멜레온이라서인가요? ㅎㅎ (이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 중 하나 같기도 합니다. 카멜레온같은 정용화~)

YDG가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용화와 함께한 음악은 그냥 물 흐르듯이 되었다” 고 했는데, 그런 자연스러움과 느긋함의 화학작용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부터 음악작업을 하자고 작정하고 만난게 아니라, 삼총사를 찍으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된 어떤 유기적인 흐름이 곡에서도 들려요. 서로 참 다른 둘이 만나서 팡팡 터지는 케미스트리가 아름다운 무지개빛 불꽃을 만들어낸 느낌.

에또...그리고 이번 곡의 파트너 역시 성공한 덕후 인증인게, 비트라디오에서 밝혔듯이 용화는 랩퍼 YDG의 엄청난 팬이기도 했습니다. 예전 앨범의 수록곡까지 가사를 다 외우고 있는걸 보고 놀랐다고 했죠. 그런 그와 함께 드라마도 찍고, 노래도 만들고, 술도 먹고, 공연도 하고... 정말....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야...후.... ㅋㅋㅋ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언젠가 YDG와 함께 좀더 어둡거나 거친 스타일의 음악도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용화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보컬의 이면에는 우울을 치닫는 저음이나 할퀴는 락킹한 고음도 있으니, 그런 음악세계와 거친 질감의 YDG음악이 만난다면 어떨까 너무 궁금하거든요.


Checkmate
이 곡을 대만 라디오였나요? 를 통해 먼저 들었을때 든 감상.
“이 곡이 타이틀이 아니라고?!?!!??!!?”222222222222

내용면에서나 멜로디면에서나 DSM라인의 굵직한 후계자라고 생각합니다.

극히 개인적으로 제가 DSM을 분류하는 기준은 “딱 들었을 때 피가 끓느냐 안 끓느냐” 여부인데, 처음부터 강렬하게 치고 나가서 내내 진동하는 심장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죠. 정점을 치달으면서 임준걸의 목소리와 한데 포개져 I’ll be there till the end~ ooh hooo yeah~ 할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짧아서 아쉬웄지만 KBS 뮤직뱅크에서 보여준 이 부분의 라이브는 진심 레전드죠. (뒤이어 마이크를 스탠드에 꼽는 장면까지...크으으 bbb) 둘의 조합에 대한 부분은 후에 다시 서술하겠습니다.

가사는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냉소적이고 비정하며, 흡사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로지 자신이 위로 향하기 위해 서로 짓밟고 창과 방패로 찌르고 막으며, 독을 내뿜고 피와 뼈가 튀는 형상이 눈앞에 그려져요. 

여기서 저는 화자의 태도가 흥미롭습니다.
한껏 어두운 세계관을 펼쳐놓고, 모두가 적인 이 곳에서 자신이 힘껏 싸워 승리자가 되겠다고 천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함께 하자”고 외칩니다. 함께 싸우자, 나도 너를 위해 싸울게. 체크메이트에 걸린 상황처럼 숨막히는 세상에 대한 비관 대신, 함께함(‘2gether?’)이 어떻게든 이 혹독한 세상을 버텨나갈 대안입니다. 역시 긍정적인 방법을 찾는 점이 지극히 정용화답습니다.

저런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는 많을텐데, 굳이 체크메이트를 쓴 이유 중 ‘mate’라는 단어가 함께하는 파트너, 동반자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궁예 한 스푼 더).

‘In my head’나 ‘Where you are’, ‘robot’ 시절엔 어둠속에서 방황하면서 아득히 보일 듯 말 듯한 미래의 빛을 향해 달려가던 그는 외로워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솔로앨범을 갖고 나온 그는 어느때보다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의 존재를 갈구하거나, 혹은 이미 찾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솔로 투어를 통해 보여준 정용화밴드의 든든함으로도 그러한 돌파구의 일면을 엿본 것 같구요. (거울 앞 남자를 이용한 밴드 소개에서의 멤버들과 주거니 받거니 이루어지는 즉흥적인데도 찰떡같은 호흡은 진심, 막 벅차고 든든하지 않았나요? ㅎㅎ)  솔로앨범의 네 곡을 함께한 그의 우상들과 동료 뮤지션의 존재도 좋은 일례가 되겠지요. 

이미 많이 언급되었지만, 임준걸씨와의 목소리 궁합은 최고입니다.네 분의 콜라보레이터 중 서로 보완하는 소리로 보았을 때 단연 마음에 드는 합이예요. 워낙 대가인 뮤지션이지만, 특히 깨끗한 미성이고 하이톤이면서도 강인하고 고음도 훌륭합니다. 성량도 풍부하구요. 때론 미성을 내기도 하지만, 주로 탁성 발성이나 굴곡있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쓰고, 거친 긁는 소리를 내는 용화와 마주했을때 가히 최상의 시너지효과를 냅니다. 서로가 함께 유니슨(같은 음)으로 불러도, 화음을 넣어도 각자의 인장이 확연히 드러나며 서포트하면서도 전면에 동시에 나설 수 있죠.

또한 이 곡이 한국어, 중국어, 영어라는 3개국어로 작사되었다는 점은 ‘지금의 정용화’를 보여주기에 더할나위 없는 포인트입니다. 혹자는 이걸 갖고 국내 청자를 외면했다는 둥 말도 안되는 잡소리를(...) 지껄였지만 말이죠.

제가 보는 정용화는 케이팝/한류의 특성들을 한 몸에 지닌 대표적인 아티스트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케이팝의 한 분야를 이끄는 선봉장이자, 미국적인 팝과 락의 영향을 지대히 받았고, 그걸 오랫동안 내면화해서 이제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창작하여 중국 및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지요. 국경을 초월해 키워온 그의 감수성은, 지금 역시 또다른 국경을 넘어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가 싱가포르 화교 출신이자 대만에서 활동하는 중화권의 탑 가수와 서로 소통하는 언어는 영어이구요. 따라서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적은 가사로 노래를 내는 것은 그의 현재 위치와 특성을 아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억지스럽거나 불편을 초래하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가 아니라, 그 반대로 아주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거죠. 

실은 이건 외국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당연해야 할 일입니다.
외국 가수와 협업하는 경우, 전곡을 영어/한국어 혹은 그 가수의 언어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이렇게 균등하게 언어의 평등을 이루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언어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냥 서로의 언어를 싣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용화는 콘서트에서 혼자 중국어 부분을 정확한 발음으로 불렀고, 임준걸씨도 한국어 가사 부분을 또렷이 외워서 부른 적이 있었죠. 둘 다 쉽게 배울만한 언어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찡한 감동이었습니다.ㅠㅠ (임준걸씨의 한국 팬분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ㅎㅎ)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어느 멋진 날' 앨범 리뷰의 1부를 마칩니다.

일본판에 수록된 스페셜 보너스 트랙인 '너를 좋아해서 다행이야'까지 포함한 다섯 곡의 리뷰는 다음에 이어서 올릴게요~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부 읽기: http://justjyh.com/xe/music/270686

  • mystarYH 2015.09.09 15:45
    여기서 이런글 달아도 되나요
    논문 수준의 리뷰라 선플달고..정독합니다ㅋㅋㅋㅋ
  • 제인오스틴 2015.09.09 17:32
    너무 좋은 리뷰입니다 ㅠㅠ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멋진날을 들었을때 눈물이 났었어요 덤덤하게 나오는 목소리와 가사때문에 뮤비 첫 공개된 순간 화면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ㅠㅠㅠㅠㅠㅠㅠㅠ
  • 용화처럼 2015.09.09 17:46
    일단 울고요ㅠㅠ 세간에선 인색하리만큼 써주지 않은 정확하고 세세한 리뷰 정말감사합니다. 아직도 가슴에 멍글멍글 아려서 사실 잘듣지 못하고있는... 정용화 최고!!! 저스트 최고!!!
  • Blossom 2015.09.10 00:14
    Please translate into English. Thank you.
  • heich_ 2015.09.10 00:42

    As you may or may not know, I'm the admin of this website who translates everything. Which means, very obviously, that I fully understand that the English readers of this website would wish to read something only written in Korean. I think I've been translating everything within my constraints of energy and time. On the flip side, if it is not translated, it means that I do not have that luxury at the moment.  In which case, you wouldn't need to ask. Just in case I still forget and miss, you could remind me at this link: http://justjyh.com/xe/free/208041 Please make all future requests here and not under every post written in Korean. Please don't think that I don't know your need, and that every time someone leaves only a request of translation, I really feel like my previous efforts are disregarded.

  • musica 2015.09.10 09:32
    I wish I could convey to you how much your every efforts are appreciated. So please don't feel that anything you do for us here is disregarded. I wish you'd always continue to do what you offer here out of pure enjoyment and the love we all feel for a one every special person, not out of a sense of responsibility. You have succeeded making a very unique and special site for fans of many different language backgrounds. Sincere thanks!
  • Blossom 2015.09.10 22:52

    I am sorry for my careless words and cause dis-comfort to you.  I really greatly appreciate the effort you put in this site and what you did for non-Korean speaking fans like me.  The English translation you did I personally highly appreciate from my heart.  Please trust me that I sincerely appreciate all the translation work done.  I am not good at expressing myself but please please please accept my apology for the dis-comfort I caused.  Going forward, I will think very careful in speaking and writing, not only in the internet but also in my real life.    

  • Pearl 2015.09.10 00:45
    May I know who is the reviewer?
  • heich_ 2015.09.10 00:51

    me.

  • Pearl 2015.09.10 07:56

    Thanks, it is so awesome that you have written such a long and detailed review.

  • 사루 2015.09.10 12:17
    ㅠㅠ 리뷰가 팬이여서 주관적이면서 그래서 정용화의 음악에 대해 객관적으로 쓴(?? 즉 편견이 없단) 정말 읽으면서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게하는 좋은 라뷰네요..
  • Lois 2015.09.10 12:59
    Yong Hwa will be so moved by your review when he gets around to read it eventually.
    I think you have a special talent to get into his subconcious and read his mind. Yong Hwa is so blessed to have a fan like you because you are amazing.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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